자격 문제에 대해 좀 더 논해보겠다. 최선의 인간[각주:1]을 선별해서 이들에게만 영생을 누릴 권리를 줘야 할까? 최선의 인간이란 존재하긴 하는가? 지구상 단 한 명에게만 이 권리가 주어진다면, 이는 오히려 무간지옥에 빠뜨리는 벌이 되지 않는가?[각주:2]

선별의 어려움과 더불어 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영생할 권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느낄 박탈감과 분노이다. 권리 부여가 선량한 사람임을 인증하는 마크라면, 뒤집어 보아 권리 없는 자들은 선량하지 않은 사람으로 간주된다는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단순히 불만만 품고 그치기엔, 영생이 지닌 편익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므로 불만은 강탈이나 소요 사태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특히 남에게 피해주는 것을 잠시도 주저하지 않는 쓰레기일수록 권리 강탈에 혈안이 된다.[각주:3]

그러므로 최선의 인간에게만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최악의 인간에게만 권리를 박탈하는 방식이 영생자가 서서히 등장할 과도기적인 사회에서 채택할 대안으로 보인다.[각주:4] 한마디로 수명연장 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범위가 규제로 제한될 것이라는 뜻이다. 다만 이는 그저 최악의 사태만 피할 뿐, 사회에 나타날 불만을 일소하는 방안은 아니다. 인간의 탈을 쓴 괴물에게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한들, 자신을 괴롭힌 적이 있는 사회의 잠재적인 암에게도 권리가 부여된 모습을 그냥 보고 지나친다는 건 지극히 어렵다. 가증스런 위선으로 무장한 기회주의자가 영생을 누리며 쌓아갈 죄악은 최악의 사태와 차악의 사태 간의 차이가 미미해보일 정도로 극악무도할 수 있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범죄 전력이 전혀 없으며, 이웃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아무개가 실제로는 집에서 몰래 감염 위험이 높은 치사성 바이러스를 합성해서 퍼트릴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치자. 영생자가 되기 전에는 얌전했던 그가 영생자가 된 이후에 본격적으로 이 끔찍한 바이러스를 전 세계에 퍼트려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고, 막대한 이익을 얻었지만,[각주:5] 결국 역학조사와 국제공조수사로 잡혀 처벌받는다고 하자. 불의를 단죄하고 정의를 세웠으니 감옥에 가두고 끝낼 수 있는 일인가? 영원히 아무개를 감옥에 가둔들, 이게 피해자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나마 영원히 가두는 거라면 아무개가 재범을 일으킬 여지가 없어지더라도, 만에 하나 징역 20년에 그친다면, 아니 설령 100보 양보해서 죄질의 무거움을 고려하여 징역 200년에 처하더라도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 아무개는 학살자로 다시 악명을 떨칠 여지가 극도로 높다. 재범으로 감옥에 2,000년을 가둬도 아무개에겐 사실상 무의미한 처벌이 되어버린다. 사회가 할 수 있는 단죄란, 무기징역이나 사형, 그리고 도저히 탕감할 수 없는 막대한 벌금이 된다.[각주:6]

  1. 「최선」은 「완벽」과는 다르다. 완벽한 인간은 아무 결점이 없다. 이런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사람들을 감화하며, 명석한 두뇌로 맡은 역사적 소임을 모조리 완수하는 초인일지라도 춤을 못 출 수도 있는 법이다. 최선의 인간은 여러 결점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사는 동안 선량하려고 애쓰며, 한편으론 실제로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선택만큼은 피해온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양심을 지키면서 살아온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설령 완벽한 인간에 못 미치더라도 최선의 인간 또한 보통 사람에게는 되기 어려운 목표다. 사람은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는데, 때로는 이런 실수가 너무나 치명적이어서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하면 그는 최선의 인간이 아니게 된다. 딱히 심각한 악인도 아닌데 세상의 온갖 비난을 뒤집어쓰는 사람도 있다. 열악한 노동조건, 줄어들지 않는 잔업에 시달리다가 방사능 누출 사고를 터트렸다고 치자. 과연 이 핵발전소에서 근무하던 사람만이 모든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결과만 따지면, 여기 근로자는 최선의 인간이 아니게 된다. 꼭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주변 여건 때문에 최선의 사람이 아니게 된다. [본문으로]
  2. 이 사람이 알던 지인은 이르든 늦든 모조리 세상을 떠날 것이므로 영생자는 낯선 이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물론 살다 보면, 낯선 이와도 얼마든지 친해질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친해진 이들도 떠난다. 이를 계속 반복한다. 언제까지? 영생자 혼자 세상에 남을 때까지 혹은 영생자가 스스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래도 이를 감당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영생을 못 겪어봤으므로 장담한 대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동물이니까. [본문으로]
  3. 영생을 위한 방식이 일회적이라면 피할 수 있지만, 주기적인 약물 복용이거나 주기적인 시술일 경우 문제는 극도로 심각해진다. [본문으로]
  4. 그런데 여기서도 최악의 인간의 범주가 문제가 된다. 세상에는 학살자나 연쇄살인마처럼 최악의 인간이라고 손쉽게 판단할 수 있는 케이스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범죄를 하나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부도덕으로 똘똘 뭉친 사람은 어떤가? 우리는 인터넷을 하다 보면, 거의 매일 그런 인간언저리에 걸쳐 있는 괴물을 보게 된다. 괴물의 마음을 가진 자는 구제할 수 없는 최악의 인간이 아닌가? [본문으로]
  5. 이익을 바라지 않고 단지 학살이 좋아서, 혹은 사이비 종교에 심취하여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익을 노린 경우 아무개는 훨씬 더 구제불능 쓰레기가 된다. 바이러스가 어느 정도 세상에 퍼져서 혼란이 가중될 때 바이러스와 관련된 정보를 백신 회사에 조금씩 팔면 금세 떼돈을 벌 수 있다. 사람들이 더욱더 많이 감염될수록 아무개가 벌어들일 이익은 더욱더 커지게 되는데, 벌어둔 돈을 은행에 몽땅 집어넣고 감옥에 갔다가 나오면, 은행이 파산하지 않는 한 복리로 재산이 생겨버린다. 따라서 단 한 푼의 이익도 챙길 수 없도록 부당이득을 모두 몰수하고 막대한 벌금을 매겨야 한다. [본문으로]
  6. 사례로 든 죄과를 범한 자는 교화를 통해서 사회에 돌려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나는 여긴다. 교화가 불가능한 범죄자에게 가해질 처분은 결국 단죄뿐인 셈인데, 만약 어떻게든 단죄를 포기하고 교화를 시도한다면 도저히 전미(展眉)할 수 없는 사람들이 사적 제재를 가하려 할지도 모른다. [본문으로]
Posted by Nu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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