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누릴 자격은 중요한 문제로 떠올라야 한다. 병에 걸렸을 때 치료받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렇다면 영생을 누릴 권리도 그러한가? 돈만 내면 누구나 영생을 누려야 하는가? 영생에서 비롯되는 문제 중 하나는 악인의 영원불멸일 것이다. 이는 정치가 몇 명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음모론을 신봉하는 적지 않은 사람이 일으킬 문제의 수준이 진짜 경악할 문제다. 진지한 음모론자는 음모론을 철저히 검증하지 않은 채, 이를 참이라는 전제를 깔고 행동에 옮기기에 큰 골칫거리가 된다.[각주:1] 그런 사람들이 테러를 벌인다면, 다 잡혀 들어가거나 어떤 식으로든 표적이 되어 죽을 것이다. 진정한 문제는 그런 즉각적인 행동이 아니다. 영생하는 진지한 음모론자가 꾸밀 진정한 음모는 합법적인 과정을 통한 음모론 전파 및 양성이며, 이는 정치 논리가 음모론에 잠식되어가며 민주주의 붕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음모론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지나간 일에 대한 음모론과 그렇지 않은 음모론. 지구가 평평하다거나 인류가 달에 간 적이 없다는 음모론은 완벽하게 반박할 수 있다. 지구 밖으로 나가면 지구가 둥글다는 걸 확인할 수 있고, 달에 간 인류의 흔적도 볼 수 있다.[각주:2] 지구 밖으로 나가는 게 육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라 이런 음모론 반박에는 가장 확실하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 지구가 평평하다면 바다의 수평선 너머에 육지가 보여야 하지만, 실제로는 바닷물만 보인다. 지구가 평평하다면 육지나 바다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있어야 하지만, 그 끝은 없으므로 영원히 알 수 없다. 달의 경우에는 나사 홈페이지에 상세히 적혀 있다.

 그런데 지나간 일, 즉 과거에 대한 음모론은 어떤가. 요새는 많이 인식이 바뀌었다지만, 마리앙투아네트는 사치스럽고, 명성황후는 떳떳한 조선의 국모라는 식의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그나마 이런 헛소문은 반박할 자료가 남아 있어서 인식이 바로잡힐 수 있었다. 그러나 자료가 유실되어버릴 경우, 제멋대로 폭주하는 망상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얼마나 많은 자료가 온존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미치광이의 세상을 파탄 낼 아이디어는 흉포하게 모두의 인식을 할퀴어 갈기갈기 찢는다. 자신이 신봉하는 음모론이 참이며, 반박하는 자료가 세상을 참람스럽게 혼돈에 빠뜨린다고 여겨 취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은 자료의 멸진이다. 그리하여 자기 좋을 대로 꾸민 음모론을 끊임없이 퍼트린다. 언제까지? 어차피 수십, 수백, 수천, 수만 년의 시간이 있는데 그야 음모론 확산에 성공할 때까지다.[각주:3]

 어떤 사람들은 이를 기우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물론 기우에 그치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세상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또라이가 의외로 많다. 그래도 이를 기우라고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런 자들에게 자신들의 망상을 관철할 행동력이 없을 것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에 만연하는 온갖 역사왜곡을 보면,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세상은 위기라고 봐야 한다. 심지어 이런 역사왜곡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 단위에서 장려 내지 방치되고 있다.

 사람은 제멋대로 믿고 싶어서 망상에 현실을 끼워 맞추려고 할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영생이란 두려운 것이며,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이해하기 편할지도 모르겠다. 을사오적이 여태 살아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사람들을 현혹한다고 가정해 보자. “아니, 그들은 누가 봐도 역적이자 매국노 아닌가? 아무도 역적을 환영할 리가 없다.” 과연 그렇게 장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날의 세태로 미루어 보아, 을사오적이 여전히 살아있다면 분명 이들에게 추종자가 있으리라 장담한다.

 굳이 을사오적이 아니더라도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자가 영생을 누릴 자격이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그런데 반역을 꿈꾸는 역적도당이 세력을 불리며 진보된 기술과 현란한 선동으로 「영원한 군림」을 노린다면, 이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각주:4] 철저한 학살로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모든 선거를 폐지하여 반발의 싹을 짓밟아 없애려 한다면, 영생은 그저 끔찍한 지배를 낳은 저주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영생을 보장하는 기술이 등장하더라도 이는 매우 제한적으로 조심스럽게 보급되어야 한다.


자꾸 영생영생거리니까 사이비 같아 보이는데, 영원한 삶이라고 늘여쓰기 귀찮으니 어쩔 수 없다.

순서를 맞추려고 하지만, 뜻대로 안 될 수도 있다. 어차피 메모니.

  1. 물론 음모론 신봉자로 보이는 사람 중에 실제로는 음모론을 진지하게 신봉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지구가 둥근 줄 뻔히 알면서 “지구는 평평해!”라고 지껄이다가 누가 열변을 토하며 반박하면 “사실 나도 지구가 둥근 줄 알아. 단지 네 반응이 웃겨서 그랬을 뿐이야.”라고 히죽거리는 부류의 인간 말이다. 정말 한 대 치고 싶겠지만, 진지한 음모론 신봉자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앞서 언급된 장난치는 거짓(?) 음모론자도 진짜 음모론자를 만나면 금세 진지해질 수 있다. 음모론자의 격은 아무리 논파된 명제라도 참이라고 박박 우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인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가짜 음모론자의 경우 거짓 명제를 참이 아니라고 알면서 농담하는 것이지만, 진짜 음모론자의 경우 거짓 명제에 가해진 모든 반박이 잘못되었거나 부족하다고 여긴다. [본문으로]
  2. 물론 아주 먼 미래에는 달에 찍은 발자국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쯤이면 인류가 지구에 살긴 할까? [본문으로]
  3. 이를 방어하는 방법은 비용이 꽤 들더라도 자료의 사본을 꾸준히 만들어 여기저기 퍼트리면서 원본은 대중이 모르는 장소에 은닉하는 것이다. 설령 사본이 몇 개 없어져도 사본을 계속 만들 수 있다면 미치광이 음모론자의 계획은 막을 수 있다. 원본은 어디에 두는 게 가장 안전할까? 아무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텅 빈 곳, 즉 우주 최대 공허가 안전성만 따지자면 제일일 것이다. [본문으로]
  4. 나는 이게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민주주의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지키기 어렵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생산성을 증진시키고 삶을 더 윤택하게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디스토피아로 다가설 가능성 또한 증가시킨다. [본문으로]
Posted by Nu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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